환단고기와 국통맥2013. 3. 23. 13:54



환단고기는 여러 사람을 거쳐 전수되었다. 그 중 환단고기를 현 세상에 드러낸 분은 이유립 선생이다. 이유립 선생은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관집의 4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인 이관집은 계연수 선생과 친분이 있었다. 세살 때 천자문을 익히고 여섯 살 때 『 동몽선습』을 읽다가, "한무제토멸지漢武帝討滅之 하시고”라는 구절에 이르러, “우리나라를 토멸한 한무제는 분명 우리나라 원수인데‘ 하시고’라는 토씨를 붙여
읽는 것이 나는 싫다” 하고,『 동몽선습』을 더 읽지 않았는데 듣는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기특하게 여겼다108)고 한다.

13세 때 배달의숙에 들어가 계연수, 최시흥, 오동진 등 독립운동가들에게 역사 강의를 득고 <환단고기>를 공부했다. 이듬해에는 조선독립소년단에 참가하여 단원을 통솔하는 단장이 되었다. 33세에는 신풍학원을 세워 교사로 종사하며 조선의 얼과 역사를 가르쳤다. 그러나 신사참배 거부, 창씨개명 불응, 무궁화 심기 운동 등을 이유로 1942년에 학교를 폐쇄당했다.

1948년 5월 월남 후 1963년에 대전 은행동에 정착하고 그해에 단학회를 단단학회로 개칭후 후학을 기르며 역사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였다. 대전에서는 1963 ~ 1976년까지 거처했고, 이후 의정부로 올라가서 거주하다 1986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상생출판, <환단고기>, 72~76쪽 인용, 참고)

항간에 이유립 선생을 친일했다고 몰아붙인다.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인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게 뭐라 한다고 ~~ 위에서 본 이유립 선생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어릴 때부터 독립운동을 하고,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탄압을 받고, 스승 계연수 선생이 일제에 잡혀 사지가 잘려 죽는 모습을 본 사람이다. 이유립 선생의 여러 일화를 보면, 선생은 학문에만 관심이 있지 물욕이나 다른 데는 관심 없는 분임을 알 수 있다. 

 



1963~1976년까지 이유립 선생이 거주하던 대전 은행동 자택. 지금은 재개발 철거지역이다.



이유립 선생이 거주하던 은행동 자택을 보면 알겠지만, 한 평생을 우리 역사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분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환단고기는 이유립 선생의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전수되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오로지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 일신을 희생하신 이유립 선생의 이름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에서 횡행하는 것처럼,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마녀사냥하듯이 마구잡이로 악평할 분이 아니다.

할 말은 많지만 줄이고, 이유립 선생의 연보로 대신한다.




 

 

출처 : 상생출판, 『환단고기』, 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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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아야산다구